첫 글
2019년 11월 19일 화 오전 3:36
ti esti;
그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본질 탐구를 갈망했던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잘 드러내는 말이지요. 어떤 것을 모를 때 우리는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데?
ti esti to kalon;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아름다움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낱낱이 파헤쳐보자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멋있어 보이는 얘기로 교양 예술을 쌓자는 건 더더욱 아니었구요. 저는 우리가 아름다움에 대한 일말의 직관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또한 나름의 멋진 미감을 지니고 있을 테지요. 제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물은 까닭은 그에 대해 학문을 하자는 게 아니라, 경험적인 대답을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우리를 통해 하고 싶은 건 경험의 공유입니다.
색과 열과 무게는 있고, 경계를 짓는 윤곽선은 없는 것. 그런데도 다른 것과 명확하게 구별되어서, 결국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로 남는 것. 그걸 저는 아름다움이라고 부릅니다. 아름다움을 빼곡히 심어놓은 예술을 처음 감상할 때 저는 청정한 사랑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말라 붙은 성대에 슬퍼합니다. 말할 수 없기에 외롭습니다. 말을 원하기에 한 번 더 외롭습니다. 적확한 언어가 아니더라도 저의 사랑을 말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두 번째 욕망이 좇아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모든 색과 열과 무게를 탐욕스레 담고 싶어집니다. 소유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밑이 깨진 화병 같아요. 다들 그렇게 느끼지 않나요. 우리는 한평생 예술을 쫓아다닐 겁니다. 그래서 우리를 동류라고 부를 수도 있겠어요. 혼자 가는 동류들. 그리고 문득, 어제 저녁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덜 외롭고 더 행복할 방법을 고안해내었죠. 혼자 가지 않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뜻이 맞았고 그래서 우리를 동료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바라건대 근본적으로 공유할 수 없는 것을 공유해주세요.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주세요. 서로의 아름다움이 어디서 왔는지, 대체 무엇이었는지 더듬더듬 부정확한 대답을 내주세요. 가장 경험적이고 개인적인 사념들이 결국 우리를 엮어줄 겁니다. 연대 속에서 서로에게 예술을 배우고 알아가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첫 글을 마칠게요. 저도 이만 자야겠습니다.